"단속반 뜨면 숨고, 입간판 술래잡기까지"…생존 몸부림치는 면세점
영업 경쟁에 입간판 늘리다 강제수거…"노점상과 똑같아"
로드샵처럼 '행사합니다' 외치기도…"일단은 살아야지"
- 문창석 기자
(서울=뉴스1) 문창석 기자 = 인천공항에 입점한 주요 면세점들이 최근 점포 밖에서 '1+1' 행사를 외치며 호객 행위를 하고, 직원들은 광고물이 인쇄된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등 적극적인 영업에 나섰다.
면세 업황이 역대급 부진에 빠지자 체면을 벗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이란 평가다.
1일 면세업계 및 인천국제공항공사 등에 따르면 지난 1월 인천국제공항에선 제2여객터미널 내 입점한 면세점들이 설치한 입간판(대형 배너)이 공항 청사 관리와 관련한 주요 문제로 떠올랐다.
공항을 이용하는 여행객들에게 상품을 홍보하는 입간판은 통상 점포 입구에 2~3개 세워둔다. 하지만 경쟁이 과열되며 점포마다 입간판을 10개 이상 늘리고, 위치도 점포 입구가 아닌 통행로 중앙에 배치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일부 점포는 사람 키 2배에 달하는 초대형 입간판을 세우기도 했다.
입간판이 통행로를 잠식하자 '동선을 방해한다'는 지적과 민원이 다수 제기됐다. 입간판을 피하느라 보행자들이 부딪히고 걸음을 자주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공사는 입점 면세점을 상대로 계도하는 한편, 경고 후 미조치 시 강제 수거 등 단속에 나섰다.
면세점들은 공사 직원들이 주 5일 근무라 주말에는 단속반이 없다는 점에서 우회로를 찾았다. 이들이 퇴근한 틈을 타 금요일 저녁 입간판을 대거 설치하고, 주말 동안 영업한 뒤 일요일 저녁에 수거해 단속을 피하는 것이다.
평일에도 단속할 때만 입간판을 점포 가까이 옮겨두고, 단속이 끝나면 다시 통행로 한복판에 설치하는 '술래잡기'가 매일 벌어졌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시내 번화가에서 구청 단속반을 피해 도망 다니는 길거리 노점상과 흡사했다"고 말했다.
술래잡기는 지난 3월 끝이 났다. 입간판 때문에 통행이 위험하다는 여행객들의 민원이 지속해서 제기된 것이다. 공항 이미지 하락을 우려한 공사 임원진이 면세점에 강한 문제를 제기한 끝에 '신사협정'을 맺으면서 입간판 사태는 종식됐다.
그러나 면세점들은 또다시 우회로를 찾아냈다. 입간판에 들어간 이미지를 그대로 인쇄한 티셔츠를 만들어 자사 및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입혔다. 광고를 철거시키자 아예 옷으로 입혀 '걸어 다니는 광고판'을 만든 셈이다.
지금도 인천공항 면세점에선 이들을 만나볼 수 있다. 단순히 면세점 밖을 돌아다니기만 해도 홍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담배를 사려는 여행객이 지나가다가 '담배' 티셔츠를 입은 면세점 직원을 보고 '어디로 가면 되느냐'고 묻는 등 즉각 효과가 나타난다.
풍속을 해치는 행위가 아니기에 단속에도 자유롭다. 면세점 입장에선 담배를 판매하는 사원이라 담배 유니폼을 입은 것이고, 업무를 하다가 화장실 등에 가기 위해 이동한 것이라 해명하면 된다. 물론 화장실은 최대한 멀리 있는 곳으로 다녀와 광고 효과를 극대화한다.
또 다른 면세점 관계자는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걸 처음 보고 일부는 '저렇게까지 영업해야 하나'라고 했다"면서도 "하지만 그냥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뿐이라 공항공사에서도 뭐라고 할 수 없으니 '머리가 참 좋네'라는 반응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일부 대기업 면세점을 중심으로 행사 프로모터를 활용해 출국장에 진입하는 여행객에게 쿠폰을 지급하는 등 과도한 홍보가 이뤄지기도 했다.
일부 점포는 면세담배 반입 한도가 1보루인데도 2보루 이상 구매 시 할인해 주는 등 불법을 부추기다 적발돼 계도를 받는 일도 있었다.
특히 점포 밖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1+1 행사합니다'라고 외치는 등 번화가 로드샵에서나 볼 법한 영업도 하고 있다. 다만 불편을 준다는 지적이 일부 나오자 최근에는 점포 앞을 지나는 고객들에게 '이쪽으로 오세요'라고 말하는 호객 행위를 하고 있다.
면세업계는 올해 1분기 면세점 실적이 반등한 건 이런 현장에서의 처절한 노력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각 사에 따르면 지난해 롯데·신라·신세계·현대 등 주요 면세점 4사의 합산 영업손실은 총 2777억 원에 달할 정도로 실적이 곤두박질을 쳤다. 하지만 올해 1분기에는 4사 합산 61억 원의 영업이익으로 겨우 흑자를 냈다.
매출도 상승하는 추세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 3월 국내 면세점 매출은 1조 845억 원으로 전월 대비 8.4% 증가했다. 1조 원도 넘지 못한 지난 1월 매출액(9544억 원)을 고려하면 바닥을 찍고 점차 반등하는 모습이다.
면세업계는 지난해부터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하며 고강도 체질 개선에 나서기도 했다. 롯데·신라·현대는 희망퇴직 등으로 인원을 감축했고, 신세계·현대는 기존 점포를 폐점 및 축소 운영했다.
업계 관계자는 "면세점이 로드샵처럼 점포 밖에서 행사를 외치거나 상품 티셔츠를 입고 홍보한다는 건 예전 같으면 생각도 하지 못했을 일"이라며 "과거엔 양복 차려입고 팔더니 이젠 동네 마트처럼 됐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어쩔 수 없다. 당장 실적이 난리가 났는데 일단은 살아야 하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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