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보조금 삭감 으름장 이어 '추가 투자 압박'…삼성·SK '현기증'
美 상무장관 "더 많이 투자해야 보조금 분배"…TSMC 언급
삼성·SK, 집행 중인 투자도 천문학적…"상황 바뀐 건 없어"
- 박주평 기자
(서울=뉴스1) 박주평 기자 =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반도체 및 과학법'(칩스법) 보조금 지급 기준을 상향 조정하겠다며 추가 투자를 요구하고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반도체 품목 관세도 예고하고 있어 이를 무기로 투자 압박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이미 국내 대규모 생산 시설 증설과 연구·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집행 중인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로서는 미국의 투자 확대 압박이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 통과된 칩스법은 미국에 반도체 제조 및 연구·개발 시설을 짓는 기업에 보조금과 세제 혜택 등을 제공하는 내용이다. 바이든 전 대통령은 임기 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기업들과 계약을 매조졌으나, 보조금을 비판해 온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재협상을 시작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4일(현지시간) 미 상원 세출위원회에 출석해 '반도체 보조금을 배분할 계획이 없는지 명확히 말해달라'는 제프 머클리 의원(오리건·민주)의 질의에 "만약 재협상하고 있는지를 묻는 거라면, 미국 납세자의 이익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그렇다"라고 답했다.
이어 바이든 정부 시절 체결된 보조금 계약에 대해 "과하게 관대해 보였다"며 약속된 보조금을 축소 지급할 수 있다는 뜻을 드러냈다.
특히 러트닉 장관은 추가 투자를 약속한 대만 TSMC와 미국 마이크론을 언급하면서 "미국에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질 경우에만 보조금을 분배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칩스법 보조금을 약속받은 다른 기업들에 대해 추가 투자를 요구한 셈이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공장 2곳과 R&D 시설 1곳 등 37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며 47억 5000만 달러의 보조금을 받기로 했다.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에 HBM 패키징 공장과 R&D 시설 설립에 38억 7000만 달러를 투자하고, 보조금 4억 5800만 달러를 받기로 했다. 삼성전자 테일러시 공장은 내년 하반기 양산 준비를 마칠 예정이고, SK하이닉스의 인디애나 공장은 2028년 하반기 양산 계획이지만 아직 착공 전이다.
더욱이 미국 상무부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반도체 품목 관세 부과를 예고하고 있어 투자 압박은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고성능 AI 반도체 수요 대부분을 책임지는 미국이 반도체 관세를 부과할 경우, 가격 인상과 그에 따른 수요 감소가 우려된다.
미국이 압박하더라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쉽게 투자 확대를 결정하기에는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지속해야 하는 반도체 업계 특성상 계획되지 않은 투자를 집행하기 어렵다. 양사가 이미 국내에 진행 중인 시설투자 규모만 해도 천문학적이다.
삼성전자는 289만㎡ 부지의 평택 캠퍼스에 (약 87만 평) 6개 생산라인(P1~P6) 건설을 추진 중이다. P3까지 완공됐지만, 범용 D램 공급 과잉과 파운드리 수주 난항으로 P4와 P5 공사 일정은 미뤄진 상황이다. 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내 320조 원을 투자해 생산시설을 조성할 계획이며, SK하이닉스도 120조 원을 들여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생산시설 착공을 시작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차세대 메모리 개발에도 막대한 연구개발비가 투입된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연구개발비용으로 동기 기준 역대 최대인 9조 348억 원을 집행했고, SK하이닉스도 1분기 연구개발비용으로 전년 동기보다 39.2% 증가한 1조 5540억 원을 썼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에 대한 투자도 현지 고객사와 기술 협력 등을 위해 결정한 것"이라며 "보조금은 일부 고려 사항이 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투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연초부터 보조금 재협상에 대한 언급이 있었기 때문에 상황이 바뀐 것은 없다"며 "지켜보면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너무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내부적으로 시나리오에 따른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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